이수희 작가

"오늘도 저는 아름다웠던 그 날들의 흔적을 찾아 헤맵니다. 그림이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리운 그 시절, 곳곳으로 날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찾아올 나의 세 번째 유년 시절을 꿈꾸듯 기다립니다."

- 이수희 작가 <그날들이 참 좋았습니다> 中 -

작가소개

아름다웠던 날들

이수희 작가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과 자신의 모습을 하루하루의 일기처럼 그린 그림으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한 그림과 이야기를 <아름다웠던 날들>이라는 제목으로 그라폴리오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은 작가의 그림에 담긴 중요한 이야기이자, 그림을 그리는 동력입니다. 그림을 보는 동안, 저마다 아름다웠던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와 작은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2020 KB CALENDAR 작품 리스트

1월 작품

1월

세배하러 가는 길

종이에 색연필2017

까치 까치 설날이 오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알록달록 고운 한복을 입고 모두의 얼굴은 설렘으로 발그레했지요. 한 집 한 집 함께 돌며 세배를 하고 세뱃돈을 받는 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즐겁게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한 따뜻한 새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월 작품

2월

붕어빵

종이에 색연필2019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김이 모락 나는 붕어빵 하나면 마음마저 따뜻해졌습니다. 붕어빵 장수 아주머니는 할머니와 내가 붕어빵처럼 닮았다고 하시며 덤으로 몇 개를 더 넣어주시곤 했습니다. 시리고 추웠던 겨울, 이렇게 작은 기억 하나로 따뜻하고 포근한 날들로 남아 있으니 참 신기한 일입니다.

3월 작품

3월

피아노 연주

종이에 색연필2018

엄마와 나란히 앉아 젓가락 행진곡이며 고양이 왈츠며 피아노를 칠 때면 어느새 방안은 향기로운 꽃으로 가득 찬 듯했습니다. 이런 다정한 순간들이 모여 삶을 아름답게 하고 사랑의 관계를 더욱더 단단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힘든 삶을 이겨내게 만드는 힘은 이렇게 작고 반짝이는 순간들로부터 오는 것이니까요.

4월 작품

4월

학교 다녀왔습니다

종이에 수채2018

낡은 대문을 아름답게 장식한 장미 넝쿨, 소담스러운 작약과 으아리, 파꽃, 나리꽃, 멀리서부터 알아채고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나를 반기는 바둑이, 모른 척 졸고 있는 야옹이, 한결같은 웃음으로 "내 강아지, 인자 오노..." 하며 맞아주시던 할머니... 나는 또 왠지 모르게 벅차고 뿌듯한 마음이 되어 힘차게 외쳐봅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5월 작품

5월

시장 다녀오는 길

종이에 색연필2018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가는 일은 언제나 즐거웠습니다. 시장은 늘 신기한 물건들과 부지런한 사람들로 생기가 가득했거든요. 엄마의 짐을 나누어 들고 갈 때면 어른이 된 기분도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가에서 만난 벤치에서 엄마와 함께 먹었던 쭈쭈바는 어찌나 시원하던지 상큼한 쭈쭈바 하나씩 입에 물고 나란히 앉아 참 별것도 없는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6월 작품

6월

여름엔 옥수수

종이에 색연필2018

강원도 산골의 여름엔 옥수수가 최고의 간식이었습니다. 달큰한 옥수수 껍질은 외양간 소들에게도 참 맛있는 식사가 되었지요. 옥수수 씨앗을 심고 키워내고, 수확하고 열매뿐 아니라 잎과 줄기까지 소중히 쓰이는 과정을 지켜보며 매년 이런 환상적인 맛의 옥수수를 실컷 먹을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7월 작품

7월

마을 나무 그늘 아래

종이에 수채2018

더운 여름엔 마을의 큰 나무 아래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커다란 그늘이 만들어주는 넉넉한 시원함 아래에서 모두는 한낮의 열기를 피해 더위를 식혔습니다. 수박을 나누어 먹으며,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삶의 이야기들을 나누며...매미 소리가 그리 울창한데도 평상 위,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누우면 그렇게 달디 단잠이 쏟아지곤 했습니다. 후끈한 여름도, 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잠시 쉬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8월 작품

8월

우산 놀이

종이에 수채2018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들을 죄다 펴 놓고 우산 집을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 있으면 꼭 정말 아늑한 집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우산으로 토도독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고 좁디좁은 공간에서 친구들과 함께 호들갑을 떨며 수다를 떠는 것도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는 모든 놀이가 참 재미있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거든요. 욕심 없던 시절, 순수했던 너와 나의 모습이 많이 그리워집니다.

9월 작품

9월

마을버스 정류장

종이에 색연필2016

하루에 몇 번 다니지 않는 마을버스 정류장에는 항상 할머니들이 계셨습니다. 읍내 장에 내다 파실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좀처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계셨지요. 다리가 많이 아프신 할머니, 허리가 많이 아프신 할머니, 우리 동네 할머니들은 농사일이며 집안일을 너무나 많이 하셔서 안 아프신 곳이 없었지요. 그런데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들 놀러 오면 과자라도 더 사주고 싶으셔서 읍내에 장이 열릴 때마다 손수 키우신 것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좀처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셨습니다.

10월 작품

10월

가을 소풍

종이에 색연필2018

오래된 책장을 정리하다가 낡은 책 속에서 툭! 떨어진 사진 속 웃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느 해 가을, 단풍 속으로 소풍을 갔었을 때였습니다.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이름이 가물가물한 친구도 있네요. 바래진 사진처럼 기억도 점점 흐려지지만 그날, 바람에 실린 우리들의 웃음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11월 작품

11월

꽃보다 할매

종이에 색연필2018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자그마한 미용실은 할머니들의 사랑방이었습니다. 엄마를 따라 미용실에 가면 미용실 한 켠 긴 의자에 항상 할머니들이 머리를 말고 앉아 계셨습니다. 난로 위 고구마와 따뜻한 보리차를 먹으며 나누시던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마치 노랫가락 같아서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곤 했습니다. 얼굴은 다르지만, 머리 모양은 모두 똑같았던 시골 동네 할머니들... 고단한 삶을 잘 살아내느라 패인 주름들이 꽃보다 아름답습니다.

12월 작품

12월

스케이트 타기

종이에 색연필2018

겨울은 참 춥고 시린 계절이지만 함께 할 누군가가 있다면 겨울만큼 따뜻한 계절도 없습니다. 꽁꽁 언 공기를 가르고 저마다 발개진 얼굴로 스케이트를 함께 타던 친구들... 더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던 엄마의 품속... 동물들도 서로 살을 맞대어 체온을 나누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 한 잔 손에 들고 눈 오는 바깥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있는 너와 나만으로도 참 풍성해지는 계절이었습니다. 지금 이 겨울이 작은 감사로 가득 차고, 함께 할 수 있음이 더없이 소중해지는 따뜻한 계절이기를 바라봅니다.

go top